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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익산 왕궁리유적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왕궁리유적은 미륵사지와 함께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백제 최대 규모의 유적입니다.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위치하는 왕궁리유적은 미륵사지와 약 5km 떨어져 있고 자동차로는 1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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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유적과 왕궁리유적전시관 입구 모습입니다.
입구 왼쪽으로는 왕궁리유적이, 정면에는 왕궁리유적전시관이 위치합니다.
아쉽지만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휴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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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유적에 들어서기 전에는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기와와 석제품이 야외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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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는 무려 30만 점 정도 출토되었으며 제작방법과 기와 무늬를 유추하여 연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합니다.
석제품은 총 200여 점이 출토되었으며 이 중 용도를 확인할 수 있는 일부를 야외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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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왕궁리유적 비석과 왕궁리유적 입구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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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유적에서 확인된 담장과 내부 구조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백제 왕궁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외각의 담장은 폭이 3m이고 동서로 245m, 남북으로 490m 뻗어있고 장방형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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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유적에 들어서면 정면에 왕궁리 오층석탑과 대형건물터, 강당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본래 왕궁으로 일정 기간 사용한 후 사찰로 바뀌게 되었는데, 왕궁리 오층석탑은 백제 왕궁의 경영이 끝난 후 사찰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 삼국사기의 저자로 유명한 김부식이 백제 궁궐 건축에 대해 한 말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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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오층석탑은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서 만든 탑이라고 합니다.
높이는 9m이고 단층 기단, 얇고 넓은 옥개석 그리고 3단 옥개 받침 등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에서는 금강경판 19장, 금동제사리함, 사리병 같은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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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안에는 의례나 의식, 정무, 휴식을 위한 공간, 후원 등 다양한 역할의 건물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먼저 남측에는 국가의 중요한 의례나 의식을 행하던 건물, 왕이 정사를 돌보던 건물, 왕과 왕의 가족을 위한 건물들이 배치되었고 북측에는 왕의 휴식을 위한 공간인 후원과 서북측에는 백제시대 가장 귀중품인 금과 유리를 생산하던 공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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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중앙에는 남측의 건물터와 북측의 후원을 경계로 곡수로가 남아 있으며, 이 곡수로는 역U자형 대형수로와 함께 후원 영역을 감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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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오층석탑과 건물터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곡수로를 따라서 재현해 놓은 후원을 감상하면서 백제시대 문화를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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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을 꾸미고 있는 나무에는 따뜻해진 날씨와 함께 꽃이 핀 모습입니다.
후원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곡수로를 영상으로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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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서 본 화장실 유적은 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거리를 두어서 건물터와 후원과는 위치적으로 구분해 놓은 듯합니다.
화장실은 크기가 다른 3기를 나란히 위치해 배치해 두었는데, 이 중 가장 큰 대형화장실1의 규모는 길이 10.8m, 너비 1.8m, 깊이 3.4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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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에 담긴 오수를 모았다가 수로를 거쳐 정화시킨 후 궁궐 밖으로 빼내는 과학적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정화조화 같은 과학적 구조를 하고 있어서 벌전 했던 백제문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후원과 통하는 이 입구는 다리가 놓아져 있으며 다리 양쪽에 갓을 쓴 사람 형태의 비석이 반겨줍니다.
왕궁이 자리했던 시기에 백제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리에는 방문객들의 소원을 적은 나뭇조각들이 걸려 있는데, 이것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풍경이 힐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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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계절 봄이 찾아온 익산 왕궁리유적에서 백제 문화도 느끼고 힐링하는 시간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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