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한라그룹 창업주 정인영, 선우그룹 창업주 정순영의 동생 정세영은 1928년 8월 6일 강원 통천군에서 태어났다.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1965년 현대건설의 태국 첫 지점장으로 태국 팔라티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다.
1960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과 함께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1968년 2월 미국 포드와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했고 11월에는 현대자동차 최초의 자동차 코티나 생산을 시작했다.
당시 포드는 브랜드 품질에 대한 우려에 늘 자기자본으로 해외진출을 원칙으로 했다.
해외 진출국은 영국 독일 일본밖에 없었다.
현대차와의 협상에서 포드는 공장 경영까지 지도하겠다고 했지만 현대차는 조달할 수 있는 부품 21%를 제외한 부품만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1973년 1월 정부는 자동차 회사를 운영하려면 엔진, 변속기, 리어액슬 등 주요 부품을 자체 개발 생산해야 하며 2천달러 안팎으로 국민이 살 수 있는 소형차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GM코리아와 기아는 기술제휴사인 GM과 마쓰다(Mazda)의 소형차를 국산화하기로 하고 엔진과 필요 부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국내 협력업체에 맡겨 국산화하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 중이었지만 현대자동차와 기술제휴한 포드는 마땅한 소형차가 없어 문을 닫아야 했다.
일본 미쓰비시(Mitsubishi Motors)로부터 엔진과 미션, 액슬 기술을 받아 국산화하고 이탈리아 주지애로의 디자인 및 포드 코티나 부품을 적용하여 1974년 최초의 국산 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생산한 데 이어 1976년 본격 생산된 포니자동차 6대를 에콰도르에서 시작하여 세계 시장에 첫 수출을 하였다.
1976년 해외 첫 수출에 이어 라틴아메리카와 근동지역에 수출, 1982년 1월 포니2를 영국에 첫 진출, 1983년 캐나다 현지법인 설립, 1985년 미국 현지법인 설립, 1986년 미국 자동차 시장에 포니를 첫 판매하였고, 포니 후속모델 엑셀도 수출하였다.
그때부터 정세영은 포니정이란 별명을 얻었다.
1983년 2월에는 대영 제국 훈장 3등급의 명예 훈장 CBE 훈장을 받았다.
1988년 1월에 현대차는 전차종 수출 100만대를 돌파해, 기술 자립을 위한 연구와 개발에 의해서 1991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개발된 엔진 알파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피로했다.
이 같은 자체 엔진 개발은 1995년 베타엔진 개발로 이어졌다.
1997년 전북 전주에서 승용을 제외한 트럭, 특장차, 중대형 버스 등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차량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상용차 공장을 완공했다.
이처럼 30년 넘게 자동차산업 발전에 매진하다 1998년 12월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뒤 현대그룹에서 자동차부문 구조조정을 발표할 때 정세영 명예회장에 임명하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주 현대자동차 회장에 임명했다.
1999년 3월 형 정주영의 아들 정몽구에게 현대자동차그룹을 승계시키자 정세영은 아들 정몽규와 함께 회사를 떠나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경영했다.
2005년 5월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아들 정몽규는 같은 해 11월에 포니정재단을 설립하여 장학사업, 연구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